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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땅의 기운이 운명을 좌우하다 <명당> 리뷰

by infoteller 2023.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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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당>

 

역학 3부작의 마지막 작품 

 <명당>은 영화사 주피터필름이 제작한 역학 3부작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가장 앞서 개봉한 <관상>은 9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두 번째 작품인 <궁합>이 흥행에 실패하고 같은 해 개봉한 영화입니다. <명당>도 결국 흥행에는 실패하지 못했지만, 조승우와 지성, 백윤식, 김성균이라는 걸출한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했고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 세도 정치 

 영화는 조선 말기 어린 헌종이 즉위하고 그의 외척인 안동 김 씨 세력이 득세한 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조선의 르네상스 시기라고도 불리는 영조와 정조 시대 이후 왕의 권력은 점차 약해져 갔고, 효명세자의 이른 죽음으로 당시 8세인 헌종이 왕위를 계승하며 왕권이 거의 사라지게 됩니다. 대신 조선의 권력은 외척 세력인 안동 김 씨, 풍양 조 씨의 손에 들어갔고, 특히 헌종의 재위기간 내내 안동 김 씨 세력은 막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해 나갑니다. 심지어 헌종 사후, 다음 왕위를 계승할 사람이 없자 안동 김 씨 세력은 강화 도령이라 불리는 철종을 왕으로 옹립하고 더욱 그들의 권력을 강화해 나갑니다. 

 

 

줄거리 및 리뷰

 조선 말기 안동 김씨 세력의 리더인 김좌근(백윤식)과 김병기(김성균)는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를 독살합니다. 그리고 순조를 속여 효명 세자의 시신을 자손이 끊기게 될 운명을 풍기는 흉지에 매장하게 됩니다. 풍수의 천재라 소문난 천재지관 박재상(조승우)은 이를 반대하지만 안동 김 씨 세력의 뜻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이 일로 김좌근과 김병기는 박재상의 집을 불태우고 가족을 죽이게 됩니다. 이에 분노한 박재상은 복수를 다짐하며 13년이란 시간이 흐릅니다. 

 그 사이 안동 김씨 세력은 더욱 강성해졌고 잔치에 온 왕족이자 거지 행세를하는 흥선군(지성)에게 치욕을 주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흥선군은 당시 어린 왕 헌종과 함께 안동 김 씨를 몰아낼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흥선군은 김좌근의 아버지인 김조순의 묘를 찾기 위해 박재상과 힘을 합치게 되고, 13년 전 안동 김 씨 세력의 모략으로 효명 세자가 흉지에 매장된 것을 밝혀냅니다. 그리고 김조순의 묘까지 찾아내며 안동 김 씨 세력을 위기에 몰아넣지만, 김좌근은 권력의 힘으로 위기를 벗어납니다. 

 김좌근은 아버지 김조순의 새로운 묫자리를 찾아 나서고, 흥선과 박재상은 이를 이용하기로 합니다. 박재상은 김좌근에게 접근하여 안동 김 씨들이 왕실의 묘에 자신들의 조상을 암장한 사실을 밝혀냅니다. 하지만 왕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이 과정에서 흥선은 2대의 천자가 나온다는 명당의 소문을 듣고 이를 욕심내기 시작합니다. 흥선군은 스스로 왕이 되고 싶은 김병기를 이간질하여 아버지 김조순을 죽이게 했고 결국 2대의 천자가 나온다는 가야사를 찾아냅니다. 

 하지만 이 명당은 2대의 천자가 나오지만 나라가 망하는 기운이 있는 자리였고, 박재상은 이를 막기 위해 김병기를 이용합니다. 하지만 결국 흥선군은 아들을 왕으로 만들고 김병기는 가문의 권력을 위해 서로 합의하고 흥선은 자신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가야산으로 이장합니다. 그리고 박재상은 김병기를 속여 김조순의 묘를 흉지에 쓰게 하여 복수에 성공합니다. 세월이 흐른 후 일제강점기가 되고, 독립운동을 위해 학교를 세울 자리를 봐달라는 남자들이 찾아오고 훗날의 신흥무관학교를 세우은 데 큰 도움을 주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흥선대원군에 대한 엇갈린 평가

 영화에서 흥선대원군은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상갓집의 개처럼 행동하며 온갖 수모를 당하지만 결국 아들을 왕으로 만들고 권력을 차지한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하지만 사실 흥선대원군은 조선 왕실의 모범 왕족으로 평가받으며 권력은 없었으나 관직을 지내고 있었고, 권력을 차지한 후에도 풍양 조 씨와 안동 김 씨 세력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처럼 흥선대원군의 자손 2대 이후 조선은 망하게 되며, 다양한 평가를 받게 됩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이지 못해 조선이 망한 것인지, 시대의 흐름 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역사에는 이렇게 다양한 해석이 있어 후대가 흥미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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